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닉네임뭐로할까나 2022. 6. 30. 09:53

서점에서의 우연한 만남

어렵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내용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나의 곰스크는 무엇이고 어디인가.
누구는 돈과 명예, 누구는 꿈, 이상, 추구하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발이 묶여 안주하게 된 주인공. 언제나 곰스크는 머릿속에 가득하다.
곰스크로 가는 것만이 목표였지만 그 이후의 삶은 아무 계획이 없다.

우리 또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만의 곰스크를 향해 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열망하더라도 이상적이었던 그곳을 불안해하고 의심하지 않는가.

주인공 부부의 고민.
기차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어쩌면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비슷하다.


무엇이 중요한걸까?
대체 곰스크로 가는 길과 그 결정은 옳은 걸까, 아니면 우리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살아내는 그 과정에 흥분해버리는 걸까.

혹시 곰스크는 이전의 내가 바라던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의 곰스크는 무가치한 것일까?


옳은 것은 없다. 세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기차를 탔으면 타지 않았을 삶을, 타지 않았으면 곰스크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언제나 현실에 괴로워할 뿐이다.

인생의 의미는 이렇듯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속에 있는 것인데, 현대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우스운 놀이로만 치부된다. 음악과 시가 없는 삶, 음악과 시만 있는 삶. 먹고 살기 힘든 요즘 이 둘의 밸런스 게임 선택지는 대부분 전자이다. 예술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간에게 쉼이 되고 때론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마저도 상업적인 것만이 큰 관심을 받는다.

혼란스러울 때는 다른 사람들의 곰스크는 어디인지 살펴보기도 하고, 나의 여정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버거움을 감당할 만한 가치를 내게 주는지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기찻길 사이 사이에 간이역이 존재하나보다.

등장하는 안락의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밋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