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숨넘어가는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 없는 산.
눈 뜨고부터 잠들 때까지
자유롭고 찬란한 곳에 있던 주인공이
좋은 학교를 보내고자 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인왕산 자락을 오가며 등하교를 해야 했던 장면을 만났다.
그립고 아름다운 고향과 대비되는 도심의 산이란
이 사람의 마음에 한 순간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기에
숨김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얘, 도심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이런 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의 산을 다녀보면서 한번도 그 등산로에 대해
불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어진 대로 멍청히 발길을 옮기기에만 바빴던 나는,
되돌아 보았을 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후회했다.
소제목 순서
야성의 시기
아득한 서울
문 밖에서
동무 없는 아이
괴불 마당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오빠와 엄마
고향의 봄
패대기쳐진 문패
암중모색
그 전날 밤의 평화
찬란한 예감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전개만으로도 독자 개인만의 감흥과 사유가 깊어지는 책이다.
나이에 따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상실된 추억을 되살릴 수 있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작가의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 말부터 6.25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 속의 생활상과 이념갈등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상황에 대한 가족들의 심리묘사가 작가의 머릿속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이루어져 묘사만으로도 그 인물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치 작가의 어린 시절과 내가 동무를 하며 그 시대를 함께 지내며 그 집 마당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팬들은 작가의 고요하면서도 살아있는 표현력을 계속 경험하는 즐거움을 잊지 못하여 고인의 작품을 연달아 찾아보고 그 느낌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다.
책 제목과 소제목들을 어쩌면 이렇게 잘 지으셨을까.